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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 김재완
제 목 | 11. 卯月生에 대하여... | ||
등록일 | 2016.07.21 | 조회수 | 2,384 |
묘월이란 본격적으로 온난함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천지만물이 묘월에 이르면 확장과 분화를 시작한다. 새로운 시작의
구체적 실현이 이루어지고 인월의 뜻을 계승하여 활짝 피기 위한 경주가
시작된다.
망울이 트인 부드러운 새싹은 자신이 큰 재목이 되기 위하여 분주히
움직일 뿐이다. 그것은 순수한 어린 아이와 같은 미래를 향한 분발심이다.
기온이 아직 완연하게 따뜻하지 않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이 있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인월은 이제 출발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압력이 모여 있고 분발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강하다. 그러나 묘월은 인월에서 한단계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기운적으로 허결할 수 밖에 없다.
토끼가 굴을 여기 저기 파는 것은 천적이 오면 도망갈 구멍을 만드는 것일수도
있지만 기운이 달리고 굴을 깊이 파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습관적으로 여러개의
굴을 파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한굴에 머물지 않고 여기 저기 옮겨다니는 토끼의 습성 또한 묘월생들의
특징과 닮았다.
묘라는 것은 토끼卯자로써 묘자를 보면 두가닥의로 새싹이 갈라진 형상을 말한다.
그래서 묘월생은 어떠한 난관이 오더라도 희망을 잘 잃지 않는다. 이 방법이 안되면
저 방법을 찾고 그것이 안되면 또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또한 묘월생은 늘 밝은 곳을 향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늘 희망적이고 명랑하며
새로운 창조를 매일 매일 할 수 있는 삶의 의지를 가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의지를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근기와 지구력이 중요하다.
오행에서 근기와 지구력을 말하는 원천은 水이다.
卯입장에선 수가 원하는 목적지는 아니나 목적지로 가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다. 묘월생이 수를 필요로 하는 것은 하루내내 열심히 뛰어온
당신을 위해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며 다음날 다시 뛸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 묘월생이 수를 바라보는 입장인 것이다.
묘월생이 화를 바라보는 것은 희망의 목표가 바로 선 것이며 점령할 고지를
바라본 것과 같다. 만약 화를 바라보지 못하면 군인이 임무없이 전쟁에 나가는
격이니 의욕이 약하고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과거 고서에서 보면 묘목을 습목이라 하여 젖은 나무에 비유하였으나
그것은 자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오소(五素)적 입장으로 우주 만물을
바라보는 관점인지라 자연 전체를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묘월생이 금을 바라보는 것은 집중력이다. 묘라는 것은 본시 부드러운 기운인지라
높이 솓구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금의 조절력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말하는 오행의 대화(對化)작용이다.
이 대화작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주를 보는 것은 안과 밖을 보지 못함이요
만물의 표리부동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주를 보는 것이니 반드시
우주만물의 이치를 공부하여 헤아리시기 바란다.
묘가 바라보는 금은 그래서 자신을 채찍질해주고 정신차리게 만들어
흐트러질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을 다듬에 주어 결국 화의 목적지까지 빨리
이르게 하는 입장의 것이다.
정리하자면 목적지를 향하여 질풍노도 달리는 것이 정묘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子午卯酉란 본시 왕지이며 주역적으로는 소인
인지라 스스로 타오행에 생기를 불어 넣어줄 수 없다.
다만 주변에 협력을 얻어 크게 승화시킬 수 있으니 주변의 조력을 잘 보아야 한다.
가령 묘 한 자만 있으면 타오행을 생할 수 없으나 옆에 해수가 있어 해묘 합을 하면
천간의 정화를 능히 생한다. 만약 조력을 얻지 못한 정묘는 마음만 앞서갈 뿐이지
주변의 호응을 얻지 못하여 답답한 마음이 많을 것이며 본인의 진가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묘목이 목을 만나면 자신의 주관을 바꾸려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이 을묘이다.
묘목이 토를 만나면 매목(埋木)하려 하는 것이니 질주하는 자신을 방해하려 한다는
불만이 생겨 칠살의 성질로 바뀌게 되어 사납다. 그것이 기묘이다.
묘목이 금을 만나면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살아가는 것이니 예민하고 섬세하며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되고 자기절재를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신묘이다.
묘목이 수를 만나면 후원금을 받는 것과 같으니 낙관하게 되며 스스로를 괜찮다
생각하여 성품은 온화하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는 비관하는 이중적
성질을 갖는데 그것이 계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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